내가 하는 일의 그릇에는 오롯이 나 자신이 담겨 있다

이예지 기자 승인 2021.04.08 16:34 | 최종 수정 2021.05.04 16:16 의견 0
정두현 인터뷰어
정두현 인터뷰어

[포스트21 뉴스=이예지 기자] 직업의 선택에 대해 맹자가 말하는 유명한 어록이 있습니다. ‘화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갑옷을 만드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드는 화살이 제대로 사람을 살상하지 못할까를 걱정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드는 갑옷이 사람을 보호하지 못할까를 걱정한다.’

내가 어떤 일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에 맞게 나 자신이 서서히 변해간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먹고 살기도 힘든 시기에 보수와 더불어 업무의 가치까지 따져서 직업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직업이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 자신을 다듬어가는 것은 어떨까요?

여기 자신이 품고 있는 가치들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 콘텐츠로 표현하여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Humans of Seoul2013년부터 지금까지 약 8년 동안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콘텐츠 그룹입니다.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섭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 뒤 그들의 고유한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그들은 예정 없이 만난 인물들에게서 가장 보편적인 정서를 담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재미없을 것 같다고요? 행복, 슬픔, 용기 등 그 속에서 느껴지는 날것의 감정에 큰 감동이 밀려옵니다. ‘1.8이라고 찍혀있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10만 명이 넘게 구독하는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보면 이건 비단 저만 느끼는 감동이 아닌가 봅니다.

Humans of Seoul 기획 회의에 참여하는 정두현 인터뷰어
Humans of Seoul 기획 회의에 참여하는 정두현 인터뷰어

인터뷰어와 편집장, 포토그래퍼 등 총 16명의 스태프들이 모두 함께 Humans of Seoul을 꾸려나가고 있는데요. 별도의 광고나 투자 없이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되기에 이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활동이 나 자신을 담아내고 싶은 그릇이라고 말합니다. Humans of Seoul에서 5년이 넘게 인터뷰를 진행해오고 계신 인터뷰어 정두현 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통해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Humans of Seoul에 지원하기 전, 그는 평범한 대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해야 할 때 그는 열심히 달리는 친구들을 보며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하는지 모른 채 정해진 트랙을 묵묵히 완주해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막연히 멋진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우연히 Humans of Seoul의 인터뷰어 모집 공고를 발견합니다.

예전부터 Humans of Seoul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한테 저런 대화를 이끌어내지? 공고를 보자마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모르게 지원했습니다.”

어르신 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정두현 인터뷰어
어르신 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정두현 인터뷰어

하지만 샘플 인터뷰를 제출해야 하는 지원 과제 앞에서 그는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줄곧 말을 더듬었던 그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게 긴장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용기를 내어 서울역으로 나갔지만 사람들에게 열 번이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오기가 생겼습니다. 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었어요. 이걸 해내지 못하면 앞으로 다른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우연히 길거리에서 모금 운동을 하는 여학생을 발견했고, 그는 3000원을 기부할 테니 인터뷰를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하나를 성공한 뒤 그 추진력으로 나머지 인터뷰도 모두 성공합니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Humans of Seoul 팀은 그의 이러한 모습에서 진정성과 의지를 느꼈고, 그는 3:1의 경쟁률을 뚫고 인터뷰어로 선발됩니다.

이 활동을 통해 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변화해 나가는 게 좋습니다

그는 현재까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어로 활동하며 길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취재해 왔습니다. 지금은 평일에는 IT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주말에 인터뷰를 합니다.

직장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시간을 조율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길거리에서 불신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지치기도 하지만 그는 계속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언젠가부터 활동이 품고 있는 색채가 자기 자신에게 번져있는 것을 느꼈으니까요.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실은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우리는 타인을 조금 더 믿을 수 있고 친절해질 수 있거든요.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세상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구독자분들도 그러한 변화를 얻었다고 말씀하실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는 특히 어르신들을 인터뷰할 때 깊은 감동과 배움을 얻는다고 합니다. 삶 속 우여곡절을 두루 겪으신 뒤 엄청난 스토리를 차분히 풀어나가는 어르신들을 보며 그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정두현 인터뷰어
정두현 인터뷰어

그가 직접 뽑은 좋았던 인터뷰 중 하나: 자수성가하신 할아버지

제가 올해 77세인데, 아주 어려운 젊은 시절을 보냈어요. 남산에서 노숙 생활도 했고, 새벽마다 뛰어다니며 했던 신문 배달로 겨우 입에 풀칠 할 돈을 벌었죠.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불순분자로 몰려 집단 폭행을 당한 적도 있어요. 지금도 이마랑 발목에는 선명한 흉터가 남아있지요. 그래도 이래저래 힘든 날들을 꾸역꾸역 이겨내고 나니 해뜰 날이 찾아오긴 하더라고요. 검정고시 출신이고 대학도 못 나왔지만, 이 악물고 시작한 사업이 성공해서 자수성가 사업가라는 이름도 달게 되었죠."

"그래서 제게 아내가 생기고, 아들을 낳고, 며느리가 생기고 하는 일들이 하나같이 감격스러웠어요. 우리 큰 아들이 며느리를 처음 데리고 온 날도 기억나요. 며느리가 부모님도 안 계시고 대학도 안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아내가 반대했어요. 어떻게 사돈도 없이 결혼을 하냐는 말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게 전혀 문제로 보이지 않았어요. 저도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이렇게 떳떳하게 성공했으니까요. 결국 집사람도 제 고집을 꺽지 못 했죠. 손주가 생겼을 때는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출생 기념으로 경북 청송에 어려운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도 지었답니다. 이 모자랑 목도리도 우리 맏 며느리가 사준 거지요.”

광고, 제휴 요청에도 불구하고 상업화하지 않는 이유는 본질을 흐리지 않기 위해서

지난 8년 동안 10개가 넘는 신문사에서 Humans of Seoul을 취재했습니다. 꾸준히 인기를 끌며 외부의 관심을 받다 보니 그에 따라 수많은 광고, 제휴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하지만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홍보를 이야기에 함께 담아야 한다면 Humans of Seoul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가치가 깨질 수도 있기에 아직까지 상업화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세상에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내보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콘텐츠에 오롯이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떠한 작위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내면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야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채널로 오래갈 수 있겠다는 것이 Humans of Seoul의 생각입니다.

물론 저희도 조직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광고를 담으면서도 원래의 색깔을 유지하는 콘텐츠도 많더라고요.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팬분들과 오랫동안 동행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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