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 전통문화의 세계화 '한극(韓劇)이 앞장선다'

김민진 기자 승인 2021.10.29 08:08 의견 0
(사)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

[포스트21 저널=김민진 기자] “한국인이 가장 최초로 관극을 한 것은 굿이다. 모든 공연예술의 뿌리는 동·서를 막론하고 제례 의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조선 이래 많은 역사의 굴레를 겪으며 불교, 기독교 등 다양한 타 문화와 타 종교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굿>속에 담긴 신명과 에너지가 우리민족의 정서의 뿌리로 세월의 영겁에도 그 활력과 신성함을 잃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음에 주목했다. <한극> 속에 우리 샤만 문화속에 지속되는 우리민족만이 지니고 있는 그 독특한 활력에 주목한 것을 지속 담고자 한 것이다.”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한극(韓劇)

예술계에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가 있다. 세계적인 감독이 된 봉준호 영화감독이 언급하면서 유명해진 이 명언은 사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명언에서 비롯된 문구였다.

한국의 기라성 같은 춤꾼들과 기념사진

이 명언이 품고 있는, 다양한 민족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특수성과 고유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사)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은 몸소 실천해 나가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은 물리적 거리와 관계없이 세계화라는 이름의 공통된 문화를 공유하고 소비합니다. 보편적인 문화가 일상이 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민족적인 색채의 문화, 예술이 바탕이 되고 있어요. 세계인이 열광하고 있는 한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류에 성공한 콘텐츠를 보면 세계인들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공통된 언어, 플롯이 사용되고 있지만, 밑바탕에 깔린 예술적 정서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한극(韓劇)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양혜숙 이사장이 이야기한 한극은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공연예술의 일종으로 굿을 비롯한 한국 전통의 샤먼 문화를 공연예술의 형태로 재해석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를 품고 있는 다양한 굿과 제례 문화를 현대적인 공연으로 재탄생시킨 양혜숙 이사장의 한극은 지금까지 사실주의 연극에만 몰입하던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전통문화의 뿌리를 현대화시키는 작업에 매진

양혜숙 이사장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튀빙겐대학 철학부에서 독문학, 미술사, 철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이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1967년부터 30년 넘게 이화여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독일 문학을 연구한 학자로도 유명하지만 그녀는 한국공연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선구자로도 이름이 높다.

가운데 (사)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

1978년부터 연극평론가로 활동한 그녀는 전통을 현대화한 한극, <업·까르마(외디푸스)> <코카서스 백묵원, 브레히트>, <짓거리 사이에서 놀다>, <우주목(宇宙木)Ⅰ-바리>, <우주목(宇宙木)Ⅱ-피우다>, <우주목(宇宙木)ⅡI-레이디 원앙> 등을 연출했다. 1991년에는 한국공연예술학회를, 1996년에는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하며 우리 전통문화의 뿌리를 현대화시키는 한극을 새롭게 정립한 인물이다.

“공연예술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가 담긴 콘텐츠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우리 민족만의 풍류, 노래, 춤, 한.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활동이 바로 굿을 비롯한 샤먼 문화더군요. 그때부터 어린 시절 기이하고 신비로운 느낌으로 마주했던 굿을 공연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 콘텐츠로 비상할 날을 꿈꾸다

양혜숙 이사장은 1997년부터 2016년까지 두 차례 샤마니카 프로젝트를 진행, 아시아의 샤머니즘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요소들을 현대 공연예술에 온전히 녹여내어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한국공연예술원이 연출한 <업, 카르마>는 베트남 주최 제1회 국제실험연극제에 참가해 대상 없는 특상을 수상했으며 <제9회 ANTIQUE GREEK DRAMA FESTIVAL>에 초청받아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참여, 유럽외권 작품으로는 처음 공연을 했다.

뿐만 아니라 양혜숙 이사장은 앞서나가는 유럽의 공연예술을 국내 연극계에 소개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의 작품을 1969년부터 꾸준히 번역하고 있으며 30년 넘게 쌓아온 공연예술에 대한 지식을 책으로 남기는 데도 매진하고 있다.

<표현주의 희곡에 나타난 현대성>, <연극의 이해>, <15인의 거장들> 등의 저서에는 그녀가 직접 공부하고 체험한 공연예술에 대한 심도 깊은 깨달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꾸준히 한국 공연예술의 발전을 선도해 온 양혜숙 이사장은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 예술평론 실천상, 문화예술대상, 문화대상 등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공연예술의 대모(大母)로 우뚝 선 그녀는 앞으로도 한국 공연예술의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할 것을 다짐하며 마지막 꿈을 전했다.

“글로벌, 세계화가 일상적인 언어가 되면서 한극처럼 민족의 고유한 문화가 점차 소외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극을 비롯한 전통문화는 언제든 세계를 매료시킬 힘이 잠재되어 있어요. 우리의 고유한 문화이자 뿌리가 새겨진 공연예술, 한극이 언젠가 한복이나 한옥, 한글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크게 비상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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