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새로운 형태와 색, 여전히 꿈꿔”

이근영 기자 승인 2022.05.03 08:59 의견 0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포스트21 뉴스=이근영 기자] 도자기 하면 흔히 호리병이나 항아리 형태의 그릇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의 도자기는 화려하면서도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청자에서부터 흙이 가진 질박한 질감과 소박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백자나 다완(茶碗)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한 특징이 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예술문화명인으로 선정하기도 한 이호영 도예가는 평면도자기의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한국 도자기의 지평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전통의 아름다움에 더한 현대적 감각

흙을 빚어 높은 온도의 불에서 이를 구워낸 그릇이나 장신구를 일컬어 도자기(陶瓷器)라고 한다. 고대부터 동양은 세계가 불과 물, 나무와 쇠,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 다섯 가지 원소가 운행변전(運行變轉)하며 삼라만상을 이룬다고 보았던 것이다. 도예가가 도자기를 빚는 것도 이와 같다. 도자기는 흙을 골라 섞고 물로 점성을 주어 반죽하며, 이를 성형한 다음 가마에 넣어 나무로 불을 때 만들어진다.

도자기를 만드는 이들 공정 하나하나는 최종적인 산물인 도자기의 상태를 결정한다. 도예가는 마음에 그린 모양과 빛깔, 질감을 따라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흙과 물, 쇠와 나무, 불을 다루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배우기 위해 옛것을 답습하더라도, 이것이 경지에 이르면 전혀 새로운 것의 창조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호영 도예가의 작품 도자기는 이러한 경지가 만들어낸 독자적이자 독특한 영역으로 평가된다. 이 도예가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나 색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평면도자기’와 ‘파란자기’라고 소개한다. 평면도자기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이호형 도예가이지만, 그 역시 전통적인 도자기에 대한 연구와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기도 한다. 그 가운데 ‘달 항아리’로 불리는 백자대호(白磁大壺)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은 잘 알려져 있다.

백자대호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백자 가운데 하나로, 이를 본 사람이라면 그 흰 빛깔과 비정형의 둥근 선에, 한순간에 매료된다고 한다. 색과 선에서 따뜻하면서도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은 도예가들은 이를 재현하는 것으로 자신의 솜씨를 가늠하려 한다.

하지만 이호영 도예가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현대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뽀얀 우윳빛의 달 항아리뿐만 아니라, 비취와 코발트, 루비 등과 같이 찬란한 빛깔을 가진 달 항아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막사발을 비롯해 다양한 다완(茶碗) 작품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이호영 도예가의 평면도자기 역시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실용성과 현대적 미감을 더한 실험적인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로 빚은 결실

그릇이나 항아리 형태의 도자기가 물레를 돌려 제작하는 것과 달리, 평면도자기는 자기용 태토(胎土)를 얇게 펴 편평한 모양으로 만든다. 모양만 바뀐 것 같지만, 이호영 도예가는 이 기법을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차오를 겪어야 했다. 1,300℃의 고열을 가하면 마치 오징어를 구울 때처럼 흙에는 갈라짐이나 뒤틀림, 요철이 발생하게 되고, 크기도 16~20% 줄어들게 된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게 이호영 도예가의 독보적인 노하우인 셈이다. 이 도예가의 성과를 두고 김정남 전 청와대교육문화 수석은 “시도가 새롭거니와 평판으로 이뤄낸 성취도 예사롭지 않았다”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호영 도예가의 평면도자기 기법은 특정한 소지(素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완전히 자화(磁化)되도록 소성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방식과 차별성이 있다.

따라서 외부에 노출된 외벽에도 설치할 수 있을 만큼 내구성과 내광성을 갖추었다. 이런 강점으로 도자기 벽화 및 조형물의 재료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도공의 혼을 잇는 ‘한얼도예’

이처럼 이호영 도예가가 흙과 물, 쇠와 나무,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외조부와 선친 이현승 도예가에 이어 3대째 도예가업을 잇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현승 선생은 1940년대부터 경기 이천 일대에서 칠기와 분청자기를 생산한 도예분야 1세대로 기억된다.

(우)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과 기념사진

이 도예가는 어릴 적에 “흙 수비하는 모습을 보며 흙을 만지고 놀았다”라며 “불을 지피는 아버지 곁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도예가로서의 길은 이 도예가에게 운명과도 같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자연스럽게 도예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이호영 도예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전시회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 때 이 도예가의 평면도자기 등 수십 점의 작품이 평창 관문인 진부(오대산)역에 전시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2019년 5월에는 서울 삼성동 봉은사 내에 위치한 봉우당에서 ‘초대작가’ 자격으로 ‘선(禪) 흙에 담다’라는 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이호영 도예가는 선조의 얼과 전통을 잇는 자기를, 전문 도예인들이 도기와 자기를 통칭한 도자기로 부르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도기와 자기는 명확히 구분해서 불려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호영 도예가는 “흙을 완전히 익게 하는 나만의 작업을 하고 있다”며 “미래에도 생생히 살아 있는 문화로서 전통자기 기술과 21세기가 요구하는 작품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도예가는 현재 한국 도공의 혼을 잇는다는 의미로 이천에서 ‘한얼도예’를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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