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 뉴스=박윤선 기자] 우리나라에서 분자유전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이가 있다. 바로 김병동 서울대학교 식물생산과학부 명예교수다. 서울대 농과대학 농학과를 졸업한 김병동 교수는 세계 분자유전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수년간 식물 유전체 연구에 힘쓰는 한편 산업현장에 실용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유전학으로 정평이 나 있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립대 교수를 역임하고 1987년부터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턱없이 부족한 연구기자재를 해결하고자 IBRD 차관사업에서 총 6천만 불 유치를 성사시키고,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을 위해 농업기술개발 연구사업 정착에 막대한 공을 들였다.
더불어 100여 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고 첨단 분자유전 연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고급 연구 인력을 양성하고자 노력했다. 1999년도에는 과학기술부와 과학재단이 지정하는 우수연구센터로 선정한 식물분자유전육종연구센터를 개소하여 고추분자유전학을 세계 정상에 올리는 등 분자육종기술의 한국 조기 정착에 기여했다.
이 식물분자유전육종연구센터는 2008년 종료 후에 서울대 부설 식물유전체육종연구소가 되어 운영 중이다. 김병동 교수는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감사를 역임한 후 종신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생물리학회,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한국식물생명공학회, 한국유전체학회 등 수많은 관련 학회와 활발하게 교류 중이다.
‘꺾쇠호나선 진핵산’ 최초 발견
김 교수는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추를 집중 연구하면서 캡사이신을 최종 합성하는 캡사이신 신세테이즈 효소의 유전자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항암, 항비만 등 약리효과가 입증된 캡사이신의 합성을 유전자 차원에서 이해한 결과 육종에 활용하는 분자육종학의 길이 열렸고, 기초연구는 물론 예방의학과 건강식품 산업에 연결하여 크게 발전할 물꼬를 텄다.
그 뿐만 아니라 고추유전자은행인 ‘백라이브러리’ 제작, 고추 오렌지색 결정 유전자 발견, 고추 세포질웅성붙임 결정 유전자 분리 등의 많은 성과를 냈다. 국제가지과작물유전체사업(SOL)의 창립회원으로도 참여한 김 교수는 국제협력연구사업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김 교수는 1985년에 새로운 DNA구조인 ‘꺾쇠호나선 진핵산’(FBI DNA)을 최초로 발견했는데, 1987년 귀국 후 연구여건 조성에 시간을 보내며 중단되었다.
정년퇴임에 임박한 64세에 출간한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이중나선 구조의 비밀 Foldback Intercoil DNA>에는 그 특징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김 교수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30대 우수성과사례상, 세계 3대 인명사전인 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됐다.
유전자가위 기술에 주목하다
김 교수는 유전자가위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인간 및 동식물 세포의 유전체를 교정하는 데 사용되는 유전자 교정(genome editing) 기술로 유전체에서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한 후 해당 부위의 DNA를 정교하게 잘라낼 수 있는 연구기법이다.
현재는 인간 동식물의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가 있는 DNA를 잘라내는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가장 최근의 기술인데, 이 기술은 혈우병이나 에이즈 등과 같은 유전 질환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 농작물 품질 개량에 이용되면서 유전자 변형 식물(GMO)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기술남용 가능성을 내세우며 일부 학자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2015년 중국에서는 제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기술을 이용한 인간배아유전자 편집실험이 성공했는데, 이 실험에 충격을 받은 과학자들이 규제 정도를 논의하는 정상회담을 열기도 했다.
이에 김 교수는 “FBI DNA나 유전자가위 기술은 한국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유전자가위 기술이 FBI DNA(꺾쇠호나선 진핵산)에서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는 반복서열을 유전체 전반에 걸쳐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생명과학 제2막을 여는 가능성을 선사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FBI DNA를 차세대 DNA 연구의 핵심가치로 인지하고 동의하는 해외 전문가들이 많지만, 당사자들끼리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채널 또는 플랫폼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상황에서 한국은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지 않아 단독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그러나 주어진 역사적 역할은 감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 세계가 이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새로운 DNA를 발견하고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어가는 중인 김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FBI DNA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융합기술이 윤리적 기준을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크게 발전할 수 있도록 국제적 채널과 협력연구 관리시스템이 빨리 구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김 교수가 바라는 계획이 성사된다면 우리나라는 원천 과학기술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체계적인 조직력과 기획력을 갖추고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유전자 가위기술에 필요한 해외석학 직접 연계 채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계자 아닌 주인의식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김병동 교수. 그는 앞으로도 21세기 총체적 생명과학 시대의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선두 주자가 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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