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대연각사, 진원 불일스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자비심으로 보시를 행하는 것이 진정한 구도자의 길”

최원진 기자 승인 2021.01.11 09:51 | 최종 수정 2021.01.11 09:57 의견 0
부여 대연각사, 진원 불일스님

[포스트21 뉴스=최원진 기자] 진눈깨비가 내리는 12월의 초저녁, 눈보라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스산한 시각이다. 불일 스님은 오후 탁발을 마치고 대연각사로 돌아가기 위해 대전역 앞 버스 정류장에 들어섰다. 그때 버스 승강장 바닥에 쪼그리고 누워있는 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추운 날씨에 잘 차려입지도 않은 남자가 죽은 듯이 쓰려져 있었다. 황급히 달려가 그를 깨웠다. 차가운 몸뚱아리로 미동도 없는 그 남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불일 스님은 황급히 맥을 짚었다. 느리지만 다행히도 맥이 뛰고 있었다. 급히 119와 112에 전화해 그를 안전한 곳으로 이송시켰다. 

그 과정에서 그가 벙어리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와달라고 말도 못 하고 쓰러져 있던 상황이 얼마나 아찔했던지... 그의 주머니에 만 원짜리를 찔러두었다. 절로 돌아온 불일 스님은 승복을 벗고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후 다시 대전역으로 향했다. 

대전역 대합실에는 추위를 피해 상자를 깔고 누운 노숙자들이 있었다. 불일 스님은 탁발로 받은 보시금을 천 원짜리로 모두 바꿔 그들의 손에 3천 원씩을 쥐여 주었다. 그러다 부자지간처럼 보이는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들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아비처럼 보이는 연로한 남자의 손과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모습이 다정해 보였다. 불일 스님은 가까이 다가가 젊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부자지간이여?”
“아닙니다.”

30대가 좀 안 돼 보이는 젊은이는 자신을 목사 지망생이라고 소개했다. 불일 스님은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젊은이에게 주며 이곳에 있는 모든 노숙자에게 나눠주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젊은이가 가고 난 빈자리에 앉아 연로한 남자의 수족을 주물렀다. 그런데, 동상에 걸려 온 수족에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아. 이런 처사님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주물러 주고 있었다니….’ 

불일 스님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40여 분이 흘렀을까. 누워있던 노숙자가 눈을 떠 불일 스님을 보더니 고맙다고 ‘응응’ 거리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도 벙어리였다. 심부름을 마친 젊은이가 돌아왔다. “자네, 참 대견하구먼. 인연이 되면 다음에 또 보세.” 

불일 스님은 그들과 인사하고 절로 돌아왔다. 가끔 불일 스님은 그 청년이 생각난다. ‘지금쯤이면 훌륭한 목사가 되어 있겠지’

대승(大乘)의 기치로 자비와 보시를 실천하다

부여의 대연각사 회주이자, 부산의 아미타, 아미선원 조실로 중생 구제에 앞장서고 있는 진원 불일 스님은 자비와 보시를 실천하는 스님으로 유명하다. 부처의 법을 깨우쳐 해탈에 이르는 것을 넘어 많은 중생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있다. 

해마다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들에게 쌀 20kg씩 108포대를 기부함은 물론, 부여 17개 읍면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효잔치한마당을 연다. 아이티 대지진 탁발모금 운동에 참여했고,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팽목항을 찾아 100일 기도를 올리고, 49제, 범국민 합동 수륙 대제 등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유족들을 위로해 왔다. 

오랜 시간의 자비심으로 ‘대한민국 CEO 종교 부문 대상’, ‘참종교인 대상’,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 등을 수상했고 2012년에는 한국현대인물열전 33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바랑이 묵직한 이유

끈이 해질 대로 해진 불일 스님의 바랑이 묵직하다. 모르는 사람들은 “스님이 뭘 그리 잔뜩 넣어 다니십니까.”하고 묻는다. 바랑 속에 든 것은 경전이다. 한 두 권이 아니다. 이 무거운 것을 늘 매고 다닌다. 

안거(스님들이 수도하는 기간)가 끝나고 나면 전국 팔도의 절을 순회하는데, 그곳에는 늘 불교용품점이 있게 마련이다. 불일 스님은 그곳에 들러 경전을 산다.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중생들에게 한 권씩 나눠준다. 무턱대고 주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금강경을, 마음이 고운 사람들에게는 지장경을 준다. 

사람들마다 근기가 다르기에 그에 맞는 것을 골라 준다. 불일 스님은 자고로 불법을 따르고 배우는 수행자라면 많은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대승적 가치를 따라야 하고 중생들이 해탈할 수 있도록 올바른 법으로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라가 어지럽고 어려울 때일수록 민족의 화합과 화해가 절실

부여에서 해주 최씨 2대 독자로 태어난 불일 스님은 9살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서천의 ‘영운사’에 들어가 불법에 귀의했다. 어려서부터 경전과 수행으로 스스로를 갈고 닦았고 대한불교 조계종 백운 대강백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구도자의 길을 걸었다. 

부여 대연각사, 진원 불일스님
부여 대연각사, 진원 불일스님

오랜 수행으로 통찰력을 길러온 불일 스님은 앞일을 예언하는 선몽을 꾸는데, 이러한 내용을 당시 SNS와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고 방송국에 알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정은 위독설에 관련된 꿈을 꾸고 곧 김 씨 3습이 막을 내리고 통일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더불어 나라에 큰일이 닥치고 어지러울 때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단결해야 한다며 민족의 화합과 화해를 도모했다. 

‘탐진치’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단전 아래에 마음을 두는 훈련이 필요하다

불일 스님은 불법을 닦고 따름에 있어 그 법을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고집한다면 오랜 세월, 하루 한 끼를 먹으며, 뼈를 부수고,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쓰고 외우는 고행을 할지라도 이것은 마치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아 아무 보람도 없고 수고스러운 것이라고 설법했다. 

불법은 내 마음에서 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탐·진·치(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를 끊어내야 하는데, 마음을 가슴과 머리로 올리지 말고 항상 배꼽 아래, 단전에 두는 훈련을 하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마음을 잘 다스려서 탐진치를 끊어 낼 수 있다면 지혜로운 성불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법을 설했다. 코로나19로 불자들과의 만남이 어려운 탓에 불일 스님은 유튜브에 ‘불일 TV’를 개설했다. 전국의 사찰과 대선사를 소개하고 발길 닿는 대로 담아놓은 스님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채널을 통해 모든 중생이 고행을 벗어나 참 행복의 길로 갈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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