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 김재환 화백, ‘십장생도(十長生圖)’ 한국 미술의 르네상스 기대

작품의 유가증권화 추구하는 작가로 호평

최원진 기자 승인 2021.02.28 09:43 | 최종 수정 2021.02.28 09:50 의견 0
대홍 김재환 화백
대홍 김재환 화백

[포스트21 뉴스=최원진 기자]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되지만, ‘하늘이 허공(空)하고 쇠(鐵)가 강하다’고도 보지 말고, ‘하늘이 쇠(鐵)’이요 ‘쇠가 허공(空)’ 즉, 하늘처럼 비었다고 관찰할 때 비로소 4차원의 세계를 이해하듯 저의 ‘십장생도(十長生圖)’도 선 하나 하나가 무엇을 표현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전통적인 모습에 현대적인 시선을 덧씌워 새로운 십장생도를 선보이고 있는 대홍 김재환 화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십장생도는 불로장생의 비술을 터득한 신선(神仙)에 대한 열망으로 자연에서 장생(長生)과 관련된다고 생각하는 열 가지 사물을 골라 그 표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 대상은 해, 산, 물, 돌,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달(구름) 등이 있다. 

역사와 함께, 대중과 함께 해 온 십장생도(十長生圖)

십장생도는 예로부터 오래 산다고 믿어왔던 불로장생의 열 가지 사물을 길상화 하여 그린 그림으로 궁중은 물론 민간에까지 널리 애용된 그림이다. 고구려 벽화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고, 고려 말 이색의 ‘목은집(牧隱集)’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대중에 상당히 유행하였음을 알게 한다. 현대에 와서도 십장생도는 다양한 가구와 소품의 무늬에 활용되고 있고 여전히 많은 이들의 애장품으로 간직되고 있다. 

맥이 살아있는, 기개와 힘이 느껴지는 그림을 담다

관념산수, 실경산수, 화조도, 달마도 등 한국화의 대가로 불리는 대홍 김재환 화백의 십장생도가 최근 새로운 화풍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전통의 미에 세밀하고 개성 있는 필선이 더해져 기존의 작품들과 차별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한 획, 한 획마다 화백의 힘과 기개,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김재환 화백은 “십장생도는 한국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며 “전통적인 것만 고수하기보다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또 한 번 변화하고, 관객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십장생도를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김 화백의 십장생도는 세밀하면서도 다채로운 필선에 음양오행설에 따른 오색을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다.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쏟는 그의 에너지는 그림 한 폭을 그려내는 열정과도 같다. 그림에서 살아있는 맥을 느낄 수 있고 강한 힘을 엿보게 된다. 

일필일혼의 정신으로 기와 혼을 불어넣다

작품에 정진할 때 일필일혼의 정신으로 기와 혼을 불어넣는다는 김 화백은 단순하게 예쁜 그림보다 힘과 기운이 느껴지는 그림, 학문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그림, 현실과 이상을 초월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단순히 그린다는 행위에서 더 나아가 불보살과 천지신명들께 ‘그림을 잘 보살펴 주고 소장하는 분들을 보호해 달라’고 수없이 기원하며 붓을 든다며 이런 기운들이 대중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소원했다.

김 화백은 “예술은 창작이고 창작에는 영혼이 담겨야 하기에, 단순히 물건을 찍어내는 기계와 같아서는 안된다”며 “전통 회화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장생도도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정립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화폭의 오른쪽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도록 오른손 엄지의 지장을 낙관과 함께 찍는데, 이 또한 이러한 가치관과 철학을 주요시 생각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마산 진 화랑에서 첫발을 내딛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김 화백은 해무가 낀 바다, 신비로운 해금강을 곁에 두고 자랐고 그 아름다움을 그림에 담곤 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아 그림은 물론이고 서예까지 통달했다. 화가의 꿈은 16세 무렵 품기 시작했고 20살에 마산에 위치한 진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한국화에 발을 내디뎠다.

87년 무렵 서울로 상경해 정릉의 한 사찰에서 기거하며 매일 아침 북한산을 올랐는데, 주변의 산세와 봉우리를 감싸는 안개를 보며 관념과 실경을 겸한 전통 산수와 실경 산수를 거침 없이 그렸다. 그 때 만큼 많은 그림을 그린 적도 없다. 그래서였던가. 당시 고수하고 있던 전통 필법이 현대화된 실경 산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고 이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이때부터 새로운 화풍의 변화를 꾀하게 됐다. 

그것이 바로 전통과 현대적 시선을 담아낸 지금의 십장생도다. 동양적인 것에서 더 나아가 한국적인 것을 찾는 외국인들조차도 김 화백의 십장생도에서 다채로운 전통 놀이를 보는 기분이다. 복숭아를 상징적, 또는 미학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소나무, 바위, 산, 물, 바다 등은 때론 한국화 기법으로, 때론 추상적 전통 선묘 기법으로, 때론 발묵 등으로 다양한 필법을 구사한다.

전통의 고수와 훼손에 대해 김 화백은 “전통에는 그 나름의 이유와 매력이 모두 녹아 있는데, 이걸 단순히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면 전통 본연의 모습을 훼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 작업은 십장생도에 남겨진 전통의 모습은 그대로 고수한 채 그곳에 현대인의 시선을 덧씌우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성에 도(道)를 표현하며 나아가 영(靈)과 함께 그림화 되야”

1976년 봄 무렵, 신문의 해외토픽 기사를 통해 세계에서 제일 비싸게 그림이 판매 됐다는 글을 읽었다고 한다. 김 화백은 그 순간 온 몸에 뜨거운 전율을 느꼈다. 자신도 그러한 세계적인 예술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갖게 된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에서 주는 작가 내심의 표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만의 심오한 작품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그 무엇의 지조를 동반한 개성과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고 사람들 가슴속에서 우러 나올 수 있는 내면의 영적 에너지나 도(道)의 경지를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 줘야 진정한 시대의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화백은 이를 기초로 예술성의 시각을 넓혀 나갔다. 그는 1980년대 후반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를 설명했다. 유럽에서 14.5세기 일어났던 르네상스를 우리나라에 심어야겠다는 큰 서원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화가에 대한 미천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화가를 멸시했죠. 한 예로 영조가 강세황(김홍도 스승)에게 ‘미천한 손재주로 예술품이라 하지마라’ 라는 말을 듣고, 강세황 선생은 일주일간 집에서 나오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머리 좋고 경제력 있는 집안 자식들은 누구라도 화가가 되려고 하지 않다 보니 그림값이 종이 값 처럼 되었던 거죠” 

이처럼 김 화백은 화가의 인식과 그림의 가치도 높여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각인 시켰다. 화가는 10~20년간 표현기법에 몰입해야 하고 20~40년은 철학과 사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소견을 밝혔다. 그 이후에는 작품성에 도(道)를 표현하며 나아가 영(靈)과 함께 그림화 되야 한다고 제언한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더해, 알 수 없는 또 다른 존재가 그림을 보호하는 것인데, 고흐의 작품에서 이런 현상이 나옵니다. 과거 중국의 화가들 그림중에 이런 기이한 형상이 가끔씩 일어난 기록이 남아 있죠” 그림의 가치를 최대한 극대화하기 위해 순수하게 창작에 몰입한 작품은 유가증권화 돼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시장의 형성에 가치성이 무한하게 달라질 수 있다며 피카소, 고흐, 고갱, 제백석, 장대천, 김홍도, 장승업, 박수근, 천경자 처럼 산에서 도 닦듯 일생을 그림만 그리다 사라진 영웅들을 소개했다. 앞서 밝힌 김 화백이 자신의 작품을 유가증권화 시키겠다며 원을 세운 이유다. 현재 작품화 하고 있는 십장생도나 풍경화는 변화를 위한 방편이라고 밝힌 그의 작품이 주목받고 있다. 

Profile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3회, 특선 4회 입상 경력으로 국내에서 개최된 7회의 초대 개인전을 비롯, 한국미술 뉴욕 초대전, 한-일 미술 교류전, 한-중 화가교류전, 한-대만 친선교류전, GIAF 2008 베이징올림픽 기념 특별전, 웰컴투 광화문 등에 참여했다. 

 

저작권자 ⓒ 포스트21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