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런 것 잘 몰라, 그냥 사는 거지...”

“저는 사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걸 보면 두려워요”

김지연 기자 승인 2021.04.04 12:20 | 최종 수정 2021.05.04 16:16 의견 0

[포스트21 뉴스=김지연 기자] 서울 시청 부근에서 내려 출근하는 길, 맥도날드에 잠깐 들러 3000원 남짓한 맥모닝을 매일같이 샀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항상 같은 구석 자리에 앉아 허름한 차림새로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드시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듯한 모양새에 새벽부터 부지런히 나와서 바깥을 활보하셨겠다는 추측이 들었는데요.

생각해 보면 깔끔하고 휘황찬란한 서울 시청 일대의 구석구석에는 늘 여러 노인분들이 계셨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약 1000명을 기록하던 때에도 여전히 길거리에서 노인분들이 바삐 움직이시는 걸 볼 수 있었는데요.

꼭 어딘가에 출근하지 않아도 집에서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만 잘 활용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사회학자 ‘오찬호’의 말을 인용하자면, 디지털에 익숙함을 전제로 구현되는 언택트 세상은 노인들에겐 공상과학소설을 마주하는 느낌이 아닐까요? 안정된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서 이제는 육체를 사용하여 소일거리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그들은 가장 취약하면서도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인스타그램 로고

너무 극단적인 사례일까요? 하지만 생계를 위협받지 않는 고령층의 경우에도 사회의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소외받는 현상은 예전부터 줄곧 일어났습니다. 2018년 실시한 한국은행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모바일 뱅킹 서비스 이용 비율은 12.9%, 70대 이상은 6.3%에 그쳤습니다.

또 70대 이상의 58.8%가 모바일 뱅킹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는데요. 이러한 ‘금융 소외’ 현상은 그들을 받을 수 있는 혜택들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다른 언어를 구사하게 합니다. 사회 속 좌표 평면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사람들과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지점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비단 노인들만 그럴까? 아니요, 10대도 그래요

학교 교육이 비대면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면서 조용한 환경에서 좋은 기기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펙이 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고3 학생은 “동생 세 명이 엄마가 구해온 중고 노트북으로 번갈아가며 수업을 듣는다.

학교에서 스마트 기기를 빌릴 수 있었지만 지적 장애가 있는 셋째가 고장 낼 것 같다”며 온라인 수업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한 달 125만 원의 정부 지원금으로 생활하는데 차마 엄마에게 온라인 교육에 뒤처지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조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올해의 대표적인 기술 트렌드는 ‘메타버스’입니다. 이는 아바타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마치 현실처럼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진보된 디지털 세계인데요. MZ 세대는 이 3차원 세계에 접속하여 콘서트도 즐기고 친구들도 만납니다.

현재 가장 진화된 형태의 메타버스 플랫폼이라며 주목받고 있는 것은 미국에서 내놓은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입니다. 미국 16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이를 즐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 접속자 수가 무려 570만 명을 넘나듭니다. 아마 곧 한국으로 로불록스 열풍이 옮겨붙지 않을까 추측해 보는데요.

가상 현실 이미지

메타버스 세계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려면 먼저 빠르고 안정된 5G 통신망이 깔려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VR 기기가 필요합니다. 최근 가성비가 좋다고 평가되는 VR 기기 제품은 300달러(약 30만 원), 스펙이 좋다고 하는 제품은 799달러(약 90만 원) 등 모두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 하지만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않으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혼자 낄 수 없는 시대가 이미 진작에 도래한 지 오래죠. 많은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시장이 나날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빠르게 따라갈 수 없는 사람들

‘FOMO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fear of missing out’을 따서 만든 용어로, 대세에서 소외되거나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현상을 칭합니다. 아이폰으로만 접속할 수 있는 어플 ‘클럽하우스’가 뜨면서 아이폰 중고거래가도 수직 상승했습니다. 사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부푼 마음으로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얼리 어답터’들은 소수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충분한 여건이 되지 않더라도 트렌드에 뒤처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뒤처지는 사람들이 생기는데요. 기술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예찬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기술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조명을 나눌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건강히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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