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국보훈의 달은 6월일까?

포스트21뉴스 승인 2021.05.13 09:52 의견 0

[포스트21 뉴스=최현종 기자]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고 그들의 업적과 희생을 기억하는 의미깊은 달. 꼭 기억하고 기려야 할 달이긴 하지만,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자세히 알지 못한다. 6월은 왜 호구보훈의 달로 지정이 된 걸까? 6월의 주목할 만한 기념일에 대해서 살펴본다.

보훈이란?

보훈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사람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그에 보답한다는 의미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외세의 침략에 맞서서, 혹은 우리 민족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이들의 공을 찾고 포상하는 것이다.

국가보훈은 나라가 반드시 수행해야할 의무이자 도리로 한국에서는 1950년 공비토벌 희생자 등을 위해 마련한 ‘군사원호법’을 시작으로 보훈제도가 발전되었다. 1961년에는 군사원호청이라는 보훈 관련 전문 부서가 만들어졌고, 원호청은 1984년 국가보훈처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진 크라우드 픽

호국보훈의 달이 본격적으로 조성된 시기는 군사원호법이 시행되었던 1952년이다. 당시 6.25전쟁에서 희생된 이들과 상이군인들을 돕기 위해 ‘군경원호강조기간’이 6월로 지정되었는데, 이것이 굳어져 호국보훈의 달이 된 것이다.

민족사의 비극, 6.25 전쟁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 된 기저에는 6월에 일어난 커다란 비극, 6.25전쟁이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해방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일어난 민족사의 비극이었다.

남한과 북한의 전쟁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내 유엔군과 공산군이 참전하면서 세계 이념전쟁의 대리전 양상이 되어버린 전쟁이 6.25전쟁이었다. 이 전쟁으로 한반도 전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남, 북한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말았다. 양측을 합쳐 군인만 50만여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면 민간인은 300만 여 명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과 전쟁이 나기 전 10년 전까지만 해도 함께 광복, 해방을 부르짓던 이들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 마냥 증오로 범벅이 되어 치열하게 전개된 전쟁.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이 양국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6.25전쟁이 6월에 일어났기에 6월만 되면 이 전쟁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는 데다가 당시 순국한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6월만은 조금 진중한 추도의 마음을 가지기를 권하고 있다.

호국, 보훈의 의미에 어울리는 다양한 6월의 기념일들

6월을 상징하는 날이 6월 25일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호국 보훈의 달에는 그와 비슷한 기념일이 몰려있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붉은 옷을 입고 전장을 누볐던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 그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이 음력 4월 22일이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6월 1일이 된다. 그래서 지금도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6월 6일 현충일은 6.25 전쟁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정된 기념일이다. 이날에는 조기를 게양하고 아픔을 되새기기 위한 기념식도 열리고 있다. 그리고 6월 29일에는 제2 연평해전이 있었다.

나라 전체가 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던 2002년. 6월 29일에 서해 북방한계선 근처에서 북한 경비정이 선제 기습 포격을 가했다. 이에 서해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 해군은 30분간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 전쟁으로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참수리 357호정은 완전히 반파되고 말았다. 그날의 희생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6월 29일 역시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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