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의해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밀그램 실험’, 조작 의견도 제시 돼

김민진 기자 승인 2021.07.05 15:17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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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21 뉴스=김민진 기자] 인간은 지구상 어떤 동물보다도 윤리적이며 이성적인 존재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고, 자신이 설정한 그 기준에 따라 행동양식을 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든다.

인간이 그토록 윤리적이고 이성적이라면, 대체 나치나 파시즘, 홀로코스트 같은 비극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독일인들이 어쩌다 나치의 수호자가 된 것인가? 이에 대한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어 소개해 볼까 한다.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라는 이름의 실험 시행

1961년, 예일대학교의 심리학과 조교수인 스탠리 밀그램은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라는 이름의 실험을 시행한다. 20대에서 50대 사이의 남성 40명을 신문 광고로 모집하고, 피실험자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학생 역할의 피실험자는 전기의자에 묶어두었고, 교사 역할의 피실험자는 전기 충격 발전기가 있는 다른 방에서 전기 충격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전기 충격은 15V부터 15V씩 증가하도록 설정되어 있으며 300V가 넘어가면 인체에 위험하다는 문구도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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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문제를 틀리면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하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학생 역할을 맡은 이들은 모두 배우였고, 전기 충격기 역시 가짜였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교사 역할의 피실험자들은 문제가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했다.

고통스러워하는 배우의 연기에도 450V까지 전압을 올린 피실험자들의 비율은 65% 가까이 됐고, 밀그램은 이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복종에 관한 행동의 연구”라는 이름의 논문을 발표했다.

권위에 굴복한 대다수의 실험 참가자들

밀그램이 이 실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라도 권위를 가진 이의 명령이 있을 때는 비윤리적인 일을 자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실험 참가자의 65%가 450V까지 전압을 올렸으며, 남은 35% 가운데에서도 22.5%의 피실험자들은 315V까지는 전기 충격을 가했다.

진정으로 300V 이상의 전기 충격을 거부한 이들은 12.5%의 피실험자들 뿐이었다. 연구자의 권위 섞인 지시라는 것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밀그램은 지시를 머뭇거리는 피실험자들에게 딱 4번. 정확하고 분명한 어조로 “계속하십시오.”, “꼭 실험을 진행해야 합니다. 진행하십시오.” 정도의 지시만을 내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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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부분의 피실험자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이 지시에 순응했다. 만약 이 지시가 홀로코스트였다면? 아니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이었다면? 대다수의 인간은 의문스러워하면서도 지시를 따를 것이고, 그 결과 비극이 탄생한다는 것이 밀그램의 주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을 인터뷰하고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던 한나 아렌트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결과였다.

파시즘과 홀로코스트, 연구윤리에 경종을 울린 실험

밀그램의 연구는 파시즘과 홀로코스트와 관련해 큰 영향을 준 실험이지만, 실험과정에서의 조작과 실험내용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 덕에 이후의 연구윤리에 경종을 울린 실험이었다. 아무리 가짜였다고 하지만, 피실험자들은 자신이 이토록 비윤리적이고, 아무런 생각 없이 비참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에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기도 했다.

이처럼 피실험자들에게 정신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실험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심리학자들이 처음으로 인지한 실험으로 밀그램 실험은 이후 심리학 연구의 기초를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조작에 대한 의견도 있다. 밀그램이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여러 차례 진행한 실험 중 의미가 있는 몇 가지 수치만을 선별적으로 뽑아 활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밀그램은 수차례의 실험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만을 언급하는 등, 형평성 논란이 있을법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유사한 실험에서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기에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밀그램의 실험은 권위 있는 누군가, 혹은 어떤 권력이 모든 책임을 도맡을 때 매몰될 수 있는 인간의 윤리성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하게 해주는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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