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노래하다. 존 바에즈

김지연 기자 승인 2022.12.23 11:43 | 최종 수정 2022.12.23 16:06 의견 0

[포스트 21 뉴스 = 김지연 기자] 존 바에즈는 1960년대를 풍미했던 포크의 여왕입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비폭력주의를 관철하며 인권을 위한 행동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956년에는 비폭력과 시민권에 대한 마틴 루터 킹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포크를 접하게 된 그녀는 다양한 민족의 피가 섞인 자신의 혈통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가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두운 피부색으로 인해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조롱을 당하기도 했지만 노래의 힘으로 어두운 유년시절을 이겨냅니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노래에 담아내는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이내 친구들에게 조롱을 당하던 소녀는 학교 장기자랑에서 인기 스타로 거듭나죠.

존 바에즈는 1960년에 첫 솔로 앨범 Joan Baez를 발매하였고 이 앨범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제 2의 마돈나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특유의 청아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가수의 등장에 대중들은 환호했고, 그녀의 새로운 앨범 발매만을 기다리게 되죠. 다음 해 발매한 2번째 앨범 역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으며 1962년에는 첫 번째 투어를 진행하며 밥 딜런과 함께 전국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녀는 음악 활동을 하면서도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로 연방세 납부를 거부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1965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마벨 밸리에 비폭력 연구소를 공동 설립하였고 1966년에는 공정한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등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인권 운동가로서의 면모들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존 바에즈는 1967년에 두 번이나 감옥에 투옥되었지만 꾸준히 인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68년에는 베트남 전쟁 징병 거부 운동을 이끌던 데이비드 해리스와 결혼을 하고 그에게 헌정하는 앨범을 만드는 등 노래하는 인권 운동가로서 미국 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었죠.

자신의 목소리가 필요한 곳이라면 전쟁터도 불사했던 존 바에즈

이후에도 존 바에즈는 다양한 앨범들을 발매하였고 그와 동시에 사회적인 활동들을 이어 나갔습니다. 인권 단체를 설립하여 13년 동안 운영했으며 인권 관련 2개의 명예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하나도 달성하기 힘든 일들을 모두 해내는 엄청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그렇게 미국 사회를 바꾸는 것에 앞장섰고 방탄 조끼를 착용하고 내전이 발발한 사라 예보에서 공연하는 등 자신의 목소리가 필요한 곳이라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어디든 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2019년 7월 28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왕립극장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한 이후 자신의 집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집중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콘서트 이후 그녀가 다시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1960년대부터 수십년 간 인권운동을 위해 소리 지르고, 무대에 올라 노래 불렀던 그녀의 흔적들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인권을 노래한 음악가 존 바에즈. 그녀보다 더욱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보다 더욱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노래한 가수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정신을 받들어 더욱 많은 이들이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바래봅니다. 아마 존 바에즈도 수없이 많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런 날을 꿈꾸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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