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 뉴스=강현정 기자] 도심 한복판이 순식간에 꺼진다. 지난 4월 11일, 대전 서구 월평동의 회전교차로에서 지름 40cm, 깊이 1m 규모의 땅 꺼짐이 발생했다. 내부 지름은 2m로 확인되었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같은 날 경기 양주시 옥정동에서도 지름 1m, 깊이 3m에 달하는 싱크홀이 생겼다. 서울 강동구에선 도로 함몰로 도심 한복판이 한때 마비되었고, 그 여파로 지하 공동(空洞) 탐사까지 긴급 시행됐다.

싱크홀(sinkhole), 일명 '땅 꺼짐'은 갑작스럽게 지반이 내려앉으며 도로가 붕괴되는 현상이다. 이제는 더 이상 뉴스 속 사건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에서만 땅 꺼짐 신고 건수는 2022년 67건에서 2023년 251건으로 4배 가까이 폭증했다. 원인은 노후화된 상하수도관, 지하수 유출, 대규모 굴착 공사, 부실한 지반 구조 등 복합적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도심 곳곳에서 예고 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동네도?’… 공개되지 않는 위험 지역

MBC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해 각 자치구에 지반 침하 고위험 지역 50곳을 보고받았지만, “불필요한 불안감 조성”을 이유로 공개를 꺼렸다. 그러나 시민의 안전이 걸린 정보라면, '불안'보다 '예방'이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강남 압구정, 언주로, 선릉로와 같이 교통량이 많고 저지대인 지역이 위험 리스트에 포함되었지만, 해당 정보는 시민에게 투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6조는 “국가와 지자체는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으며, 안전 정보는 적극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위험 지역의 실태조사, 점검, 공개가 부실하게 이뤄진 상황은 법 취지에도 어긋난다.

해외 사례를 보라…. 예방이 곧 최선의 대응

싱크홀은 전 세계 도시가 겪고 있는 문제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지하 석회암이 물에 녹아 자연적으로 싱크홀이 발생하며, 일부 주택이 순식간에 집채째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플로리다주 정부는 '싱크홀 리스크 지도'를 구축해 공개하고, 주택 구매 시 싱크홀 위험 여부를 의무적으로 고지하도록 법제화했다.

일본 도쿄는 2016년 하카타역 인근 대형 싱크홀 사태 이후, 지하 공사 전 단계부터 3중 검사를 도입하고 있다. 또한 위험 지역은 시민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과 지자체 웹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예방과 정보 공유를 통한 시민 참여형 대응 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제는 시스템의 문제다…. 시민 안전 위한 전면 개편 필요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땅 꺼짐 문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인프라 노후화와 사후 대응 중심 행정의 결과물이다. 반복되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라는 말로 일관한다면, 다음 사고의 피해자는 그 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고위험 지역의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 도로와 지하 시설물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민간 전문가의 상시 참여와 감사를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지하 공사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과 시민 제보 기반의 위험 감지 체계도 도입돼야 한다.

무엇보다 '재난은 정보와의 싸움'이다. 시민이 자신의 일상에서 어떤 위험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다면, 아무리 안전시설을 늘려도 실효성은 떨어진다. 인프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다. 그 토대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사회는 더 이상 안전할 수 없다.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권이다. 지금은 땅 꺼짐이지만, 내일은 무엇이 무너질지 모른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금 당장 전면적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불안은 점점 깊어지고, 그 깊이는 이번 싱크홀보다 더 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