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 뉴스=최정인 기자] “너 자신을 알라.” 고대 아테네의 한 구석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기보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끌었다. 바로 소크라테스다. 기원전 5세기, 그는 철학을 신전이나 학문서가 아닌, 거리 한복판으로 끌어냈다. 오늘날, 우리는 그에게 다시 묻는다. “철학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가?”
질문하는 인간, 소크라테스의 유산
소크라테스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제자인 플라톤을 통해 그의 사상은 후대에 전해졌다. 그는 지식이란 축적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당시 권력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당연하게 여긴 신념들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를 물었던 그는, 결국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죽음은 개인의 최후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이 현실과 충돌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사회는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을 얼마나 용납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현실 속 철학, 멀어지는 사유
현대는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다. 휴대전화 속 정보는 손끝으로 펼쳐지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 영역마저 넘본다. 그러나 이 속도 속에서 우리는 점점 ‘깊은 생각’을 잃어가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오늘날 철학은 상품이 아니기에 관심받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철학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힘인데, 지금의 세계는 정답과 정해진 길을 원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경쟁 사회 속에서 철학은 자칫 ‘쓸모없는 생각’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존재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데거는 말한다. “철학은 존재를 향한 물음이다. 그 물음이 없다면 인간도 없다.”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유가 바로 철학이다.
동양 철학, 관계의 지혜를 말하다
서양 철학이 주체와 존재를 탐구했다면, 동양 철학은 관계와 조화를 중시해왔다. 공자는 인간관계 속 도리를 통해 사회의 질서를 강조했고, 노자는 흐름에 맡기는 무위자연의 삶을 설파했다. 특히 노자의 말 중 “다툼을 멈추면 세상이 평화롭다”는 사상은 오늘날 분열과 대립의 정치, 지역, 젠더 문제 속에서 다시금 되새겨야 할 지점이다.
또한 불교 철학은 고(苦)의 원인을 집착에서 찾는다.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야말로 현대인들이 겪는 번아웃과 감정 과잉의 시대에서 절실한 실천적 지혜로 다가온다.
지금,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가상화폐가 경제 질서를 흔드는 시대.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철학은 당장 눈에 보이는 답을 주지 않지만,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이는 ‘자기반성’을 넘어서, 사회와 타인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에 살고 있으며, 이 방향은 옳은가? 그 질문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진보도, 변화도 멈추게 될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철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청소년들이 진로를 고민하고, 대학생들이 사회를 마주할 때 필요한 것은 ‘질문하는 힘’이다. 그 힘이 사회의 깊이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