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인 줄 착각하여 성관계에 응했다면 준강간?”
- 사례 1 -
김청주는 술에 취해 잠이 든 여성 A와 성관계 하기 위해 A의 바지를 벗기려 했는데, A는 김청주를 자신의 애인인 줄 착각하였다. A는 김청주를 자신의 애인으로 알고 “불을 끄라”고 하였고, 김청주가 애무를 시작하자 “누구냐”고 묻기는 했으나, 김청주가 “여관으로 가자”고 하자 “그냥 빨리 해”라고 하였다. 김청주는 A와 성관계 하였고, A는 이로 인해 1주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처녀막 열상 등의 상해를 입었다. 김청주는 준강간죄로 처벌될까.
- 사례 2 -
김서울은 잠이 든 여성 B와 성관계하기 위해 B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자신의 바지를 내린 상태에서 B의 가슴, 엉덩이, 음부를 만지다가 자신의 성기를 B의 음부에 삽입하려 하였다. 그런데 B가 잠에서 깨어 거부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더 이상 성관계 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였다. 김서울은 준강간죄의 미수범으로 처벌될까.
사례 1 :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성관계였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어야 준강간죄 성립
강간죄는 저항할 수 없는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 피해자를 간음하는 범죄인데 반하여, 준강간죄는 약물, 만취, 수면 등으로 몸을 못 가누거나 의식을 잃는 등 이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이용해서 피해자를 간음하는 범죄이다.
사례1에서 A는 김청주가 자신의 남자친구인줄로 착각하였기 때문에, 만일 김청주가 자신의 남자친구가 아니었던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성관계에 응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A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하였으니 강간이 아니냐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런데 김청주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강간죄는 강력한 폭행 또는 협박을 요건으로 하므로, 강간죄를 물을 수는 없다. 준강간죄는 어떤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빠져 있었는가? ‘심신상실(心神喪失)’이란 쉽게 말해 만취 또는 깊은 수면 등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항거불능(抗拒不能)’이라 함은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때문에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00. 5. 26. 선고 98도3257 판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술에 취하여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피해자를 발견하고 갑자기 욕정을 일으켜 피해자의 옆에 누워 피해자의 몸을 더듬다가 피해자의 바지를 벗기려는 순간 피해자가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났으나 피해자는 잠결에 자신의 바지를 벗기려는 피고인을 자신의 애인으로 착각하여 반항하지 않고 응함에 따라 피해자를 1회 간음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이와 같이 피해자가 잠결에 피고인을 자신의 애인으로 잘못 알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위와 같은 의식상태를 심신상실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피해자가 심신상실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여 원심(항소심)의 무죄판결의 결론을 유지하였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도4355 판결).
대법원은 또 “피해자는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중 피고인이 안방에 들어오자 피고인을 자신의 애인으로 잘못 알고 불을 끄라고 말하였고, 피고인이 자신을 애무할 때 누구냐고 물었으며, 피고인이 여관으로 가자고 제의하자 그냥 빨리 하라고 말한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피고인의 이 사건 간음행위 당시 피해자가 심신 상실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도4355 판결).
성관계 상대방을 착각하여 진심으로는 원하지 않는 성관계였을지 몰라도(중간에 상대방이 “누구냐” 묻고 “그냥 빨리 하라”고 말한 것을 보면, 성관계를 완전히 거부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준강간죄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여야만 성립할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사례 2 : 실행의 착수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면, 행위 도중 그러한 상태에서 깨어나 성행위가 중지됐더라도 준강간 미수죄 성립
김서울의 사례는 어떤가? B는 깊이 잠들어 있었는데, 김서울이 자신의 옷을 벗기고 성관계를 하려 하자 잠에서 깨어 거부하는 기색을 보였다. 즉, B는 당초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는데, 김서울이 성관계를 시작하려 하자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다.
김서울은 잠이 든 B의 상태를 이용하여 성관계하려 했으나, 성관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런데 우리 형법은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려 행위를 종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 때에는 미수범으로 처벌한다”(제25조 제1항)는 규정을 두고 있다. 김서울은 준강간의 실행에 착수하였으므로 그 미수범으로 처벌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해자의 수사기관 및 제1심에서의 각 진술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잠을 자는 사이에 피해자의 바지와 팬티를 발목까지 벗기고 웃옷을 가슴 위까지 올린 다음, 피고인의 바지를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피해자의 가슴, 엉덩이, 음부 등을 만지고 피고인이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몸을 뒤척이고 비트는 등 잠에서 깨어 거부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더 이상 간음행위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한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
“사실관계가 그와 같다면 피고인의 행위를 전체적으로 관찰할 때, 피고인은 잠을 자고 있는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바지를 내린 상태에서 피해자의 음부 등을 만지는 행위를 한 시점에서 피해자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을 할 의도를 가지고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한 것으로서 준강간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 후 피고인이 위와 같은 행위를 하는 바람에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나 피고인이 성기를 삽입하려고 할 때에는 객관적으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준강간미수죄의 성립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0. 1. 14. 선고 99도518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