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설 변호사

- 사례 -

검사는 김청주를 다음과 같이 강간죄로 기소하였다. “김청주는 밤에 자신의 집에서 배우자,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다음 날 01:00경 배우자가 먼저 잠이 들고, 02:00경 피해자도 안방에 들어가자 피해자를 따라 들어간 뒤, 누워 있는 피해자의 옆에서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고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음부를 만지다가, 몸을 비틀고 소리를 내어 상황을 벗어나려는 피해자의 입을 막고 바지와 팬티를 벗긴 후 1회 간음하였다.”

검사는 제1심 진행과정에서 예비적 죄명으로 준강간을 추가하였다. “김청주는 위와 같은 일시, 장소에서 술에 취하여 누워 있는 피해자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1회 간음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강간하였다.”

제1심은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강간죄를 무죄로, 준강간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항소심에서 검사는 다음과 같이 예비적 죄명으로 준강간미수를 추가하였다. “김청주는 위와 같은 일시, 장소에서 피해자가 실제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술에 취하지 아니하여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강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술에 만취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오인하여 누워 있는 피해자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1회 간음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강간하려 하다가 미수에 그쳤다.”

항소심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준강간을 무죄로, 준강간의 불능미수를 유죄로 판단하였다. 피고인이 상고하여 ‘준강간의 불능미수’에 관하여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결과 발생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으면 불능미수죄로 처벌

우리 형법은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여 행위를 종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 때에는 미수범으로 처벌한다(형법 제25조). 반면에 처음부터 결과발생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예를 들어서 인형에 고통을 가하면 상대방이 죽는다고 생각하고 인형을 칼로 찌른 경우, 살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위험성도 없어 무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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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과발생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위험성’ 때문에 미수범으로 처벌하는 경우가 있다. 즉,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형법 제27조).

대법원은 ‘초우뿌리’ 또는 ‘부자’달인 물을 피해자에게 마시게 하여 살해하려고 한 사건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실행의 수단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때에 해당하지만 위험성이 있으므로 살인미수로 처벌한 것은 정당하다고 하였고(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7도3687 판결)

야간주거침입절도 후 준강제추행 미수로 공소가 제기된 사건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할 당시 피해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피고인의 행위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때에 해당하지만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원심이 피고인을 주거침입 후 준강제추행의 불능미수의 유죄로 인정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3. 7. 11. 선고 2013도5355 판결).

대법원 다수의견 : 항거불능 상태 아니었더라도 위험성 있으면 불능미수죄 성립

위 사례에서 강력한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인정되지 않아 강간죄는 무죄로 판단되었다. 피해자가 만취한 것도 아니라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을 전제로 하는 준강간죄도 무죄로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실제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만취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오인하고 성관계한 경우 ‘위험성’이 있다고 보아 준강간의 불능미수에 해당한다고 볼 것인가?

이에 대해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를 가지고 간음하였으나, 실행의 착수 당시부터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았다면,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준강간죄의 기수에 이를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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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정신적·신체적 사정으로 인하여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면 불능미수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은 이에 따라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인은 불능미수의 죄책을 지게 되었다.

대법원 반대의견 : 결과발생이 절대로 불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불능미수 적용하므로, 이 사건은 무죄

한편 위 대법원 판결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다수의견은 피고인이 범행을 시도할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었음이 사후적으로 판명된 이상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던 것이고, 그리하여 준강간죄 결과의 발생은 처음부터 불가능하였던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과연 이 사건이 형법 제27조에서 규정하는 것처럼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경우, 즉 범죄행위의 성질상 결과 발생 또는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가? 다수의견의 고민과 법리 구성은 경청할 만한 것이지만 이에 대해서 선뜻 긍정의 답변을 할 수 없다.”,“결론적으로, 다수의견은 구성요건해당성 또는 구성요건의 충족의 문제와 형법 제27조에서 말하는 결과 발생의 불가능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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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실무적으로는 강간죄의 핵심적인 범죄사실인“반항을 억압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 그리고 준강간의 핵심적인 범죄사실인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을 모두 이겨내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불능미수라는 장벽을 다시 넘어야 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위 대법원 판결의 반대의견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다수의견처럼 보게 되면, 피고인의 행위가 검사가 공소 제기한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때에 해당한다는 것과 다름없고, 이 사건처럼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적용법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의 구성요건요소가 되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 때에도 불능미수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해석론은 근대형법의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전면적으로 형해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