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 뉴스=윤석란 기자] 한 사람의 삶에서 걷고 손을 움직이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그 기능을 잃은 이들에게는 평범한 하루조차 낯설고 버거운 도전이 된다.
구본교의수족연구센터의 구본교 대표는,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놓인 이들을 향한 연민과 책임감 속에서 연구의 길을 시작했다. 1979년 처음 의수족 제작에 뛰어든 그는 오랜 세월동안 R&D 연구와 실험을 이어오며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철학을 실천해왔다.
의수족에 삶의 의미를 담다 '생명을 살리는' 기술 철학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구 대표는 “의수족은 단순히 결손 부위를 채우는 보조 기구가 아니라, 환자가 삶의 존엄을 지키고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술만으로 완성품을 만들 수 있지만, 환자의 마음을 치유하고 삶의 의지를 북돋는 것은 따뜻한 사회적 시선과 인간 중심의 제작 철학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의 경영 철학은 한결같다. 결국, 첨단 기술과 인간의 손길이 만나야 진정한 혁신이 탄생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상담을 위해 구본교 의수족 연구소를 찾은 환자들의 첫 눈빛이 어떤지 그리고 의수족을 착용하고 걸음을 내디딜 때 얼굴 가득 번지는 웃음이 얼마나 값진지, 구본교 대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첨단 의수족 제작 과정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섬세한 기술적 맞춤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된다. 구 대표는 “환자와 제작 기술자가 수평적 관계를 맺어야 진정한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의수족을 제작하는 사람의 손길 속에 상호 존중과 공감이 있어야 사용자의 마음까지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후배 기술자 양성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지금은 자신만의 철학 없는 제작자가 많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뒤 “평범하게 의수족 제품의 조립만 배우고, 영리를 우선시하다 보니 기술 발전이 정체된다”며 “본질을 이해하고 사용자를 먼저 생각하는 제작자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마인드는 제품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구본교의수족연구센터는 규격화된 틀에서 벗어나, 개인별 신체 구조와 생활 습관까지 반영한 ‘맞춤형 제작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프리미엄 의족 실현, 실리콘 라이너부터 AI 의족까지
구본교의수족연구센터가 내놓은 대표적인 성과는 브랜드화 시킨 한국형 ‘맞춤형 실리콘 카본의족’의 새로운 시스템이다. 기존의 의족은 피부에 압박과 통증을 주거나 땀으로 인한 불편이 많았지만, 실리콘 라이너는 환부에 부드럽게 밀착되어 혈류를 방해하지 않고 피부 손상을 최소화한다. 동시에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효과까지 더해 위생 관리에도 탁월하다.
구본교의수족연구센터 구본교 대표
초경량 탄소섬유로 제작한 카본 소켓은 충격을 흡수하고 체중을 고르게 분산시켜 장시간 착용에도 피로감을 줄여준다. 음압식 진공 장치는 공기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절단 부위와 소켓을 안정적으로 고정해 흔들림을 막는다. 구본교 대표는 이 세 가지 요소를 “따로 존재하는 장치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이 기술을 세계 무대에 선보인 이후, 독일·영국·미국 등 해외 기업들과 협력하며 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입증했다. 2015년에는 독일 오토복(OttoBock)의 기술을 접목해 ‘구본교 실리콘 라이너’를 상용화했고, 2021년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나아가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을 접목한 ‘AI MPK 의족’을 개발해, 사용자의 보행 패턴에 맞춰 무릎 관절을 자동으로 조정하고 손가락의 움직임처럼 세밀한 동작까지 구현했다.
구 대표는 “이 의수족은 일반적인 보조 기구가 아니라, 사람과 기계가 결합하는 인터페이스”라며, 인간 중심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환자의 체형과 움직임 습관을 면밀히 분석해 개별 맞춤 설계를 진행하며, 그 과정에서 얻은 임상 경험은 끊임없는 개선과 새로운 기술 개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존엄을 지키는 따뜻한 동반자, 구본교 대표
구본교 대표의 이야기는 기술 혁신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늘 “환자의 삶을 바꾸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고 강조했다. 의수족은 신체적 회복을 돕는 동시에, 사용자가 스스로 다시 일어서고 사회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신감을 북돋워야 한다는 것이다.
구본교의수족연구센터 구본교 대표
이를 위해 재활 프로그램과 심리적 지원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제작 과정 전반에서 환자의 목소리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구본교 의수족 연구소에서는 피부 상태와 절단 부위에 맞춰 라이너 두께와 쿠션 밀도를 조정하고, 민감한 피부를 위한 특별 설계가 이루어진다.
구 대표는 “제작자는 환자의 신체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다”며, 기술자와 사용자의 관계를 평생 동반자로 정의했다. 그는 오늘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밤새 연구하며, 환자가 경험할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먼저 생각한다. 구본교 대표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의수족은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지를 지켜주는 따뜻한 동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