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타임21=정민희 기자]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문학의 위상은 더욱 굳건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숱한 시련을 겪은 나라가 있을까. 나라의 주권을 빼앗겨 시름했고 동족끼리 총을 겨눠야 했다. 강대국의 견제 속에 똘똘 뭉친 국민들이 무너진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의 아픔이 있는 나라, 대한민국. 선진국 시금석인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의 시대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은 아프다. 문학의 치유가 절실한 지금, 평생 예술에 헌신한 (사)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에게 이목이 쏠리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페터 한트케를 알아본 예술적 안목
최근 스웨덴 한림원은 페터 한트케를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페터 한트케가 1966년 처음 집필해 발표한 희곡 ‘관객모독’은 연극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한국은 행운의 국가였다.
당시 (사)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은 독일에서 한창 연극을 공부했다. 1960년대 독일 튀빙겐대에서 릴케의 시와 표현주의 연극을 전공했다. 독일 현지문학을 고스란히 체득한 양혜숙 이사장은 1969년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을 번역했다.
한국 독자들은 도발적인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을 일찌감치 만났다. 작품성이 뛰어난 희곡과의 조우는 계속됐다.
양 이사장은 이화여대 독어독문과에서 30년 동안 독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했으며 특히, 한국 연극 풍토에 새로운 장르를 소개하는 공을 세웠다. 관객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예술 장르인 연극의 전환점이 된 일이다.
그는 한트케의 작품인 <관객모독> 외에도 <미성년은 성년이 되고자 한다>(아이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카스파>(이상 연극작품), 소설 <낯선자>, <왼손잡이 여인> 등을 한국어 번역하는 활동에 매진했고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시리즈 <샤만문화>(2015), <불교의례>(2016), <궁중의례>(2017), <전통과 응용> 등을 출간했다.
특히 당시에는 생소한 [언어연극]을 소개했다. 서양의 시각을 벗어나 우리만의 공연예술 분야를 개척한 그의 도전정신은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제 자신에게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예술은 무엇이며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반복해 던지고 있다”라며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지향하는 예술, 좌절과 고통을 치유하는 예술로 반목과 불신이 넘치는 세상에 아름다운 힘을 발휘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내 공연예술의 대모 양혜숙 이사장
양혜숙 이사장의 대외활동은 우리나라 공연예술 역사의 디딤돌이 되었다. 지난 1991년 한국공연예술학회, 1996년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해 초대 원장을 지냈으며 한국연극평론가협회장, 한국 ITI회장이 되어 ITI 아태지역협회를 설립하는 등 소임을 다했다.
한국공연예술원은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학문적 연구 및 공연기법의 체계화, 무대예술의 품격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높은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독창적 공연예술인 ‘한극(韓劇)’을 계승한 공로가 있다.
한극은 무속, 불교, 의례, 궁중의례 등 전통의례 속에 뿌리내리고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하는 공연예술을 뜻한다.
한국공연예술원은 공연예술의 국제적 교류 활성화, 품격 높은 공연예술인 지도 및 육성을 위해 <한劇>의 공연기법을 연구하고 체계화하고 있다.
한국공연예술원 산하에는 공연예술의 이론과 실제에 관해 연구하고 개발하는 KOPAC씨어터(劇團), 공연예술의 진흥을 위한 출판 및 홍보를 위한 샤마니카 연구회, <한劇회> 제작·심포지움·출판·홍보·기록 등을 하는 레파토리 위원회가 있다.
<두타(頭陀)>, <욕(慾)>, <십이야(十二夜)>, <코카서스 백묵원>, <한뮤지컬(業·Karma1)>, <업(業·Karma2)>, <피우다>, <레이디 원앙> 등을 무대에 올리며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매월 개최하는 세미나를 총정리한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시리즈를 발간해 공연예술 분야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공연예술 발전에 앞장서왔던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 예술평론 실천상, 문화예술대상, 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예술과 사람, 그리고 미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예고됐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분단국가로 존재한다. 양혜숙 이사장은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살리는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혜택이 예술영역을 집어삼킬 수 있을까.
“로봇이 작업한 예술을 즐기면 행복할까요.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뇌는 예술적 DNA를 타고 났습니다. 스스로 성취하고 작업해서 예술을 완성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죠.”
양 이사장은 예술활동으로 갈등과 이념을 넘어서고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하자고 주장한다. 전문영역과 세대 차이를 초월한 상대를 인정하며 칭찬하는 예술을 실현하고 있다.
그의 혼이 담긴 한국공연예술원도 학문간의 융합을 통해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모두 행복한 예술세계는 그와 한국공연예술원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한편, 양혜숙 이사장은 지난 12월 18일 (사)한국공연예술원 제25주년 맞이 송년회 및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날 (사)한국공연예술원의 많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나라 공연예술 발전을 도모하고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2020년 새해의 비전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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