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의전협동조합 류재승 대표, 삶의 저편

최원진 기자 승인 2021.03.11 10:01 | 최종 수정 2021.03.11 10:03 의견 0
한국의전협동조합 류재승 대표

삶을 살아 내는 것, 그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3년을 보살펴 자각 능력을 키워 삶의 기초를 다지게 하고 나를 알 수 있도록 자아를 심어준다. 그래서 세살 버릇이다. 지극한 보살핌에 은혜를 삼년상으로 보답 하나보다. 예절(禮節)은 주고 받는 것이다. 부모는 나이들어 병이 드니 병고가 찾아든다. 자식은 보은(報恩)으로 보살피려 하나 현실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생명이 다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디서 왔는지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육신은 육신의 자리로 가야하고 영혼(靈魂)은 영혼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순간. 장례식은 삶의 끝자락에서 안타까운 이별을 하는 의례(儀禮)며 의식이다. 부족하다고 생각해도 아쉬움을 풀 수가 없다. 다시하고 싶어도 다시 할 수가 없다. 소홀할까?, 근심이 일까?...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결국 누군가 나를 거두어야 함에도 현실은 삶이 버려지고 죽음이 버려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도 만들어진다. 육신을 거두어야 영혼은 영혼의 세계로 간다. 어디서 왔는지, 왔던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보내지는 절차 속에서 돌아 갔다고 믿는다. 

영혼을 담았던 육신을 처리하는 의식인 염습(殮襲)은 절차도 복잡하고 걱정도 많고 근심도 많다. 염사는 정성된 마음으로 망자의 시신을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고 새옷으로 같아 입혀 가족과 의 만남을 준비한다. 얼굴도 편안히 볼수 있도록 기본 화장으로 준비를 한다. 늘 겪는 일이고 보는 일이지만 이별은 아쉬움이다. 특히, 장례식에 이별은 아픈 슬픔이다. 이제 가족과 생 이별을 한다. 가족은 혜어짐의 안타까움으로 오열한다. 마지막 이라는 순간의 절망감에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을 하며 마지막 얼굴을 본다. 

염습실은 마지막 안타까운 통곡의 바다, 눈물의 바다가 되지만, 그것이 가는 자를 배웅하는 마지막 의례(儀禮) 이기에 슬픔으로 이별을 장식한다. 병들어 죽음을 맞은 얼굴이 고울 수도 없고 예쁠 수도 없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마지막 모습 이기에 안볼 수는 없다. 사람에게 있어 기억이라는 능력은 때로 슬프게도 사람을 옭아맨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눈으로 본 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가는 길, 혹여 배라도 고플까, 걱정이 되어 쌀을 불려서 백석이요, 천석이요, 만석이요 이렇게 반함이라는 절차로 근심을 덜어 내기도 한다. 염사는 가족이 혼란스럽지 않고 편안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마지막 이별식을 안내한다. 

이별의 과정이 끝나면 시신을 염하는 과정을 진행 한다, 생명의 기운을 담았던 육신. 오랫동안 잘 사용하고 결국은 대자연의 품으로 돌려 보내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흐트러진 육신을 가지런히 만들어 온몸의 관절을 바로하는 매듭은 고를 내지 않는다. 염사의 행위도 인연을 짖는 일이기 때문이다. 맺은 모든 인연들이 술술풀려 지기를 편안하게 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온 몸의 매듭을 다 지으면 관에 모시는 입관이다. 이제 육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첫 번재 의식이 끝났다. 이제 삼도천을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고 세상을 잊는 망각에 물을 마시며 망각의 강을 건너 세상의 모든 것 다 잊고 떠나간다. 죽음을 맞으면 육신에 대한 의식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제부터 모든 의식은 영좌를 설치해야 의식을 한다. 

죽은 시체는 인식을 못하기에 의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영은 영혼의 세계로 돌아가야한다. 육신도 육신의 자리로 갔으니 영혼이 머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미련도, 가족의 미련도, 세상을 향한 미련도 모두 비우고 다음 세상으로 길을 떠난다. 자손들은 영혼이 편안하게 자기의 자리로 가기를 소원한다. 결국 삶도 염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염(殮)이라는 한글자에 다 비워야 하는 것이다. 이제 세상에서 살아왔던 삶의 모든 것을 겉는다. 염습이란 시신을 정리하는 의식이다. 그래서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지극한 존중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절차마다 조심스럽게 여며간다. 목욕과정, 가족과의 고별의식, 현세를 보는 눈을 가리고 얼굴을 덮어 세상의 모든 것을 덮는다는 뜻이다. 

육신을 염습함은 시신을 처리한다는 의미 또는 시신을 씻기고 옷을 입혀 여민다해서 습염이라고도 한다. 살아서 받은 은혜를 조금 이나마 갚고자 가족은 도리로 검소한 옷을 입는다. 고례(古禮)에는 제대로 봉양(奉養) 하지 못한 죄스러은 슬픔 마음으로 거친 상복을 입고 상을 맞았다. 삶이 유한함은 감사한 일이다. 채워진 모든 것도 결국 가져갈 것이 없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세상 사람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억만장자도, 혹은 가난한 촌부일지라도 결국은 가져갈 것 하나없는 죽음 앞에서 소유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잠시 소유한 모든 것. 가장 소중한 생명 까지도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음을 우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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