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 뉴스=최정인 기자] 2025년 3월 말, 경북 의성의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자연재해를 넘어선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진화 헬기의 추락으로 70대 기장이 목숨을 잃고, 수백 헥타르의 산림이 불타 사라진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에 다시 한 번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는 해마다 산불 앞에 무력한가.

급증하는 산불, 늦어지는 대책

통계청과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 건수는 연평균 500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기후 위기로 인한 겨울철 고온현상과 건조한 봄바람으로 인해 산불의 규모와 빈도가 모두 증가 추세다. 2022년 울진·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1만 6천 헥타르 이상의 산림을 태워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었고, 2024년에도 강원,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3월과 4월에만 20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노후 헬기와 진화 장비, 부족한 전문 인력, 지연된 초기 대응은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다. 실제로 의성 산불 당시 추락한 헬기는 제작된 지 30년이 넘은 S-76 기종으로, 이미 안전 문제가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보다 인력, 장비보다 시스템이 문제”라며 “산불에 대비하는 국가 시스템이 사실상 매년 리셋되는 느낌”이라고 비판한다.

정부의 대응 그리고 구조적 한계

정부는 산불 발생이 잦은 봄철마다 ‘산불방지 대책기간’을 지정해 비상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산림청, 소방청, 국방부, 지자체가 협력해 대응 체계를 유지하지만, 지휘 체계가 중첩되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전국적으로 운용되는 진화 헬기 47대 중 30% 이상이 도입 20년이 지난 노후 기체이고, 이를 조종하는 인력 또한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절반에 달한다.

이번 의성 사고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사고 이후 헬기 전수 점검과 조종사 안전 교육 강화를 약속했지만, 사고 이후에만 뒷북 대책이 나오는 구조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다. 더불어 산림 인접 마을의 방화선 조성, 위험 지역의 사전 통제 강화, 산불 예보 시스템의 고도화 등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산림을 지키는 길, 인식의 전환에서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기후 위기, 농촌 고령화, 예산 부족, 산림 정책의 단기성 등 복합적인 문제가 얽힌 사회 문제다. 전문가들은 “산림을 소모재가 아닌 ‘국가 자산’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AI·위성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산불 감지 시스템, 지역 공동체 기반의 산불 대응 네트워크, 친환경 진화장비 개발 등 첨단 기술과 주민 참여가 어우러지는 ‘지속 가능한 산불 대책’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다.

의성에서 불타오른 그 불씨는 이제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지는 신호탄이다. 더 이상 “봄이면 어김없이 산이 탄다”는 비극적 풍경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근본을 바꾸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