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 뉴스=최현종 기자]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시작된 집중호우가 7월 19일 기준 나흘째 이어지며 전국 곳곳에 심각한 피해를 안겼다. 7월 16일부터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도로가 침수되고,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 공공 및 민간시설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던 것.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7월 19일 오전 6시 기준, 전국에서 집계된 공공시설 피해는 729건, 사유시설 피해는 1,014건에 이른다.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곳은 충남 서산으로 누적 강수량이 543.6㎜에 달하며, 경남 산청(516.5㎜), 광주(473.5㎜), 전남 나주(469.0㎜) 등에서도 극심한 폭우가 쏟아졌다.
도심 곳곳의 지하차도, 하상도로, 캠핑장, 하천변 등이 통제되면서 시민들의 이동은 크게 제한됐다. 특히 세종 조치원 신안리 일대에서는 1번국도가 물에 잠기고 차량이 고립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전국 철도망에도 타격이 컸다.
경부선, 호남선, 장항선, 충북선, 서해선 등 총 7개 노선이 운행을 중단한 상태다. 전날까지 집계된 인명 피해는 사망 4명, 실종 2명으로 확인되었으며, 대피 인원은 13개 시도, 72개 시군구, 4,995세대에서 7,02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2,816명은 여전히 귀가하지 못한 상황이다.
2020년 폭우 사태의 재현
이번 폭우는 지난 2020년 한반도를 강타했던 ‘역대급 장마’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한반도는 6월부터 9월 중순까지 장장 100일 가까이 폭우와 태풍에 시달리며 전국적으로 홍수, 산사태, 제방 붕괴, 정전 등의 피해를 입은 바 있다.
2020년의 장마는 전례 없는 기상이변으로 평가받았다. 장마전선이 뚜렷한 패턴 없이 스콜처럼 갑작스럽게 내렸다가 그치는 형태로 이어지며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고, 강수 지역도 경상·전라·충청도에서 시작해 수도권과 강원도까지 확대됐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상 기후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와 제트기류의 교란을 지목한다. 북극과 동시베리아의 고온화가 지속되며 북태평양 고기압과 시베리아 냉기의 충돌이 잦아졌고, 이는 곧 동아시아 전체의 기후 불안을 야기했다.
2020년 폭우 사태는 한미 공동연구 결과, 미국 서부의 저기압과 캘리포니아 산불에까지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는 곧, 국지적인 재해가 아닌 지구적 재난의 일환임을 시사한다.
환경의 역습, 더 늦기 전에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 폭우, 가뭄, 태풍 등 기상이변은 ‘비정상’이 아닌 ‘뉴노멀(new normal)’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2022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쏟아진 폭우는 시간당 140㎜ 이상의 물폭탄으로 서울 도심 지하차도를 물바다로 만들었고, 그 전해에는 남부지방이 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 피해가 컸다.
이처럼 한반도는 점차 ‘기후 불균형 지대’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증가, 무분별한 도시개발, 산림 훼손 등 인간 활동이 불러온 결과다.
따라서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복구보다 중장기적 대응 전략이 절실하다. 정부는 매년 집중호우 피해 복구에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사후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도시계획 시 침수 예방 기반시설 강화, 저지대 재정비, 산림 복원, 친환경 교통체계 확대 등 종합적인 ‘기후 적응형 도시 인프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산사태·침수·감전사고…. 생활 안전수칙, 철저히 지켜야
폭우가 일상화되면서 생활 속 안전수칙도 중요해졌다. 특히 하천 근처, 산지 인근 주민은 산사태·범람 위험에 대비해 즉각적인 대피가 필요하며, 침수된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거나 도보로 진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실제로 많은 인명 피해가 지하차도 고립, 하천변 산책 중 사고 등 일상적 행위 중에 발생하고 있다.
한국시설안전공단은 장마철 대비를 위해 △비탈면, 옹벽, 건물 균열 등 주변 위험요소 점검 △배수구 막힘 여부 확인 △우천 시 공사 현장 작업 중지 등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감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물에 잠긴 전기기기나 콘센트는 절대 만지지 말아야 하며, 정전 발생 시 전기 누전차단기 점검도 중요하다.
폭우가 내릴 때마다 무너지는 도시, 반복되는 피해는 인간이 만든 위기의 반영이다. 이제는 ‘기후 재난’ 앞에서 생존을 위한 삶의 방식 자체를 재설계해야 할 때다. 오늘의 피해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위한 변화는 오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폭우가 끝난 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기상이변을 재난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근본적인 물음과 실천이 필요하다. ‘기후는 변했지만, 우리가 바뀌지 않았다면…’ 같은 피해는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폭우보다 더 큰 경고와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