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A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들의 은밀한 신체 사진과 개인정보를 확보했다. 그는 이를 빌미로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고, 피해자들은 겁에 질려 어쩔 수 없이 나체나 속옷 차림의 사진을 촬영해 전송하거나 성기에 이물질을 삽입하고 자위하는 동영상을 보내야 했다. A는 협박죄나 강요죄 외에, 강제추행죄로 처벌될까?

자수범과 간접정범의 개념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사람을 추행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는 일반적으로 범죄자가 피해자의 신체를 직접 만지는 형태, 즉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통하여 일어난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는 협박을 통해 피해자 스스로 피해자 자신의 신체를 만지게 하는 등의 행위가 있었으나, A와 피해자 사이에 직접적인 신체접촉은 없었다. 신체접촉을 ‘직접’ 행하는 경우에만 강제추행죄(정범 : 正犯)가 성립한다고 정의할 수도 있다.

자신이 직접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만 정범으로서의 범죄가 성립하고, 타인을 이용해서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자수범(自手犯)’이라고 한다. 위증죄가 자수범의 대표적인 예시인데, 법정에서 선서한 증인이 아니라면, 증인에 대하여 위증하도록 만들었더라도 교사범이나 방조범 등이 성립할 뿐 위증죄의 정범이 되지는 못한다.

반면에 타인을 ‘생명 있는 도구’로 이용하여 범죄를 실행하는 경우에 직접정범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간접정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형법상 책임능력이 없는 14세 미만의 자를 꾀어 절도를 시키거나 정신병자로 하여금 타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경우이다.

우리 형법 제34조 제1항은 “어느 행위로 인하여 처벌되지 아니하는 자 또는 과실범으로 처벌되는 자를 교사 또는 방조하여 범죄행위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자는 교사 또는 방조의 예에 의하여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강제추행죄를 자수범으로 본다면 위 사례는 피해자가 스스로 행한 성추행으로서 강제추행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피해자 자신을 도구로 이용한 간접정범

이에 대해 대법원은 A에 대하여 강제추행죄 성립을 인정하였다. 강제추행죄는 자수범이 아니고, 피해자들을 이용하여 피해자들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본 것이다.

즉, 대법원은 “강제추행죄는 처벌되지 아니하는 타인을 도구로 삼아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는 간접정범의 형태로도 범할 수 있다. 여기서 강제추행에 관한 간접정범의 의사를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타인에는 피해자도 포함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피해자를 도구로 삼아 피해자의 신체를 이용하여 추행행위를 한 경우에도 강제추행죄의 간접정범에 해당할 수 있다."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겁을 먹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나체나 속옷만 입은 상태가 되게 하여 스스로를 촬영하게 하거나, 성기에 이물질을 삽입하거나 자위를 하는 등의 행위를 하게 하였다면"

"이러한 행위는 피해자들을 도구로 삼아 피해자들의 신체를 이용하여 그 성적 자유를 침해한 행위로서, 그 행위의 내용과 경위에 비추어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여 피고인의 행위 중 위와 같은 행위들은 피해자들을 이용하여 강제추행의 범죄를 실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8. 2. 8. 선고 2016도17733 판결).

물론 위 사례에 대해서 협박, 강요, 통신매체 이용음란죄는 몰라도, 이러한 ‘원격 추행’까지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시각도 있다.

원심은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하여 반드시 신체적 접촉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신체적 접촉이 없는 경우에도 추행으로 인정하기 위하여는 성적 수치심 내지 혐오감의 정도나 그로 인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접촉이 있는 경우와 비교하여 동등한 정도라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원심 법정에서 적법하게 채택, 조사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정, 즉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피해자들과 다른 장소에 있으면서 휴대전화를 통하여 협박하여 사진 및 동영상 등을 전송받은 것으로 피해자들의 신체에 대한 즉각적인 접촉 또는 공격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해자들로서도 사법기관에 신고 등을 통하여 피고인으로부터의 위와 같은 요구나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특히 서약서를 작성한 행위 그 자체를 성적인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위 각 행위를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접촉이 있는 경우와 동등한 정도로 성적 수치심 내지 혐오감을 주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6. 10. 19. 선고 2016노83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