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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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3 08:13 | 최종 수정 2020.03.0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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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21=편집부] 봄이 온다. 매서운 추위 속 돌틈 사이 그늘진 단단한 땅속에서 마른 갈색 나뭇잎들을 헤치고 피어나는 흰 꽃. 10센티쯤 되는 여린 줄기에서 찬란하게 아름다운 생명을 피워내는 변산바람꽃을 보니 새삼 나를 돌아보며 마음을 비우게 된다.
비바람 부는 산비탈에서도 말없이 안개와 이슬을 먹고 기품 있게 피어나는 꽃. 오래전 실크로드 답사 때 모래 바람속의 사막을 묵묵히 걷던 명사산 낙타의 슬픈 눈빛.
그리고 지난 여름 고독한 은둔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히말라야 부탄의 해발 3,140m의 탁상곰파 사원을 트레킹할 때 천길 낭떠러지 옆 좁은 길을 고독한 수행자처럼 관광객을 태우고 묵묵히 오르던 수많은 말들이, 거룩하게까지 보이던 잊을 수 없는 신비하고 순한 눈빛.
산언덕이나 길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바람에 수없이 펄럭이며 내 마음을 순식간에 감동으로 사로잡던 깃발. 화려한 원색이거나 하얗게 빛 바랜 고독한 회색빛 타르초.
세상이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끄럽다. 신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미제레레>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평생 어릿광대, 노동자 등 주로 낮고 소외된 자들을 두꺼운 마띠에르로 그린, 프랑스 종교화가 조르주 루오의 판화집이 생각난다.
슬픔, 음울, 맑은 영혼을 지닌 예술가의 집념, 소송 후 화상 볼라르라는 유족들에게 되찾은 805점 중에 미완성작 315점을 손수 불태운 후 그 다음날 사망한 루오···
단단한 얼음이 녹으면 푸르른 어린 생명들이 깨어나고 산모퉁이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함께 다시 새로운 봄이 오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가고 싶은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강인한 꽃처럼 나는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내면의 눈빛이 깊어지지 못하고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성장 동력은 무엇일까?
이 봄 고삐를 새롭게 잡고 나 자신에게, 나의 내면의 소리에 더욱 집중 해야겠다. 장자의 자쾌(自快)처럼··· 모든 위대한 것들은 질문의 결과이다. 자쾌는 의존적 쾌락이 아닌 내 안에서 내적 호기심으로 생산해 낸 내가 스스로 선택한 나만의 고유한 쾌락.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독립적인 삶, 자기 배려의 기술이다.
송나라 때 야부(冶父) 선사의 선시가 고요한 달빛처럼 내 마음을 비춰 준다.
원중화소성미청 園中花笑聲未廳
임중조체루난관 林中鳥涕?難觀
죽영소계진부동 竹影掃階塵不動
월천담저수무흔 月穿譚底水無痕
정원의 꽃은 웃고 있지만 웃는 소리 들리지 않고
숲속에는 새가 울지만 눈물 보이지 않네.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달이 연못을 뚫었지만 흔적조차 없어라.
<야부(冶父)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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