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초월한 영혼의 전당, 앙코르와트

[포스트21 뉴스=김지연 기자] 캄보디아 씨엠립의 무성한 밀림 깊숙이, 햇빛 가득한 아침 안개가 걷히고 나면 경이로운 실루엣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태초의 시간을 품고 깨어나는 듯한 웅장함, 바로 앙코르와트이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을 넘어, 수백 년간 감춰졌던 크메르 제국의 찬란한 역사와 예술 그리고 인간의 위대한 염원이 돌 한 조각 한 조각에 새겨져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꾼처럼 지구촌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공이 빚어낸 거대한 교향곡이자, 살아 숨 쉬는 전설이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초, 크메르 제국의 수리야바르만 2세가 비슈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세운 힌두교 사원으로 그 거대한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그 후에 불교 사원으로도 활용되며 힌두교와 불교의 세계관이 공존하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사원의 건축물들은 고대 크메르인들의 우주관을 반영하여, 중앙 성소는 신들의 거처인 메루산을 상징하고 사방을 둘러싼 해자는 대양을 의미한다. 이러한 건축 양식은 당대 크메르 제국의 강력한 힘과 깊은 신앙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이 거대한 사원을 거닐다 보면,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부조의 향연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벽면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이 부조들은 크메르 제국의 일상, 전쟁, 신화 등을 생생하게 기록한 거대한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을 초월한 영혼의 전당, 앙코르와트

전투 장면에서는 당시 크메르 군대의 무기와 전술을 엿볼 수 있으며, 농경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그들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춤을 추는 압사라(압살라) 요정들은 돌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크메르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앙코르와트의 모든 조각은 크메르인들의 삶과 정신, 예술혼이 녹아든 걸작으로 평가된다. 수 세기 동안 밀림 깊은 곳에서 고요히 잠들어 있던 앙코르와트는 마치 잃어버린 문명처럼 잊혀져 있었다.

크메르 공학과 예술의 재발견

크메르 제국의 쇠퇴와 함께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던 이곳은 무성한 식물들에 뒤덮여 오랫동안 신비로운 전설 속에만 존재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프랑스 식물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면서, 그 숨겨진 경이로움은 다시금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의 탐험기는 서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로 인해 앙코르와트는 세계인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고대 문명에 대한 연구와 관심의 불씨를 지폈다. 앙코르와트의 재발견은 인류에게 과거의 위대한 유산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인내의 시간을 거쳐 다시금 영감을 줄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앙코르와트

특히 앙코르와트는 건축 기술뿐만 아니라 뛰어난 수리 시스템과 천체 관측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홍수를 조절하고 농업 용수를 공급했던 거대한 저수지와 운하 시스템은 당시 크메르인들의 놀라운 공학 기술을 증명하며, 사원의 배치는 천체의 운행과 일치하여 태양과 별의 움직임을 통해 농사 시기를 결정하는 데 활용되었다고 추측한다.

새벽녘 동쪽 연못에 비치는 사원의 실루엣, 타오르는 듯 붉게 물드는 석양 아래 침묵하는 유적의 모습은 시간과 자연이 앙코르와트와 함께 빚어낸 또 다른 예술작품이다. 이러한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앙코르와트는 오늘날 우리에게 삶의 찰나와 영원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선사하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얼마나 위대한 창조를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곳에 담긴 역사적 배경은 결코 끝나지 않으며, 밀림의 바람 소리와 함께 영원히 속삭일 것이다. 시간의 시험을 이겨내고 굳건히 서 있는 앙코르와트의 돌들처럼, 우리 안의 잠재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메시지가 이 영원한 왕국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